내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부는 ‘시간’
나는 삶의 속도가 많이 느리다. 밥도 느리게 먹고 걸음걸이도 느린 편이다. 의식적으로 느리게 먹고 느리게 걸으려 한다. 운동을 하거나 의도를 가지고 뛰는 경우를 제외하면 뜀박질도 거의 하지 않는다. 눈앞에 버스가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도 다음 버스를 탄다. 횡단보도도 초록불이 반짝거릴 때는 다음 신호를 기다린 뒤 건너간다. 에스컬레이터를 타도 가만히 서 있고, 엘리베이터를 타도 닫힘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 약속을 잡으면 정해진 시간보다 한두 시간 일찍 나간다.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다 편안한 마음으로 약속 장소로 느긋하게 간다. 이동시간을 계산하지도 않는다. 차가 막힌다거나 예상치 못한 긴급 상황이 생겨 기다리는 사람을 생각하며 허둥지둥 불안해하지도 않는다. 불가피하게 늦는 경우도 거의 없다. 내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부는 시간이다. 시간이 많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내 삶의 행복 지수는 뜨겁게 높아졌다. 스트레스는 줄고 발견할 수 있는 일상의 아름다움은 늘어났다.
기다리는 10분, 20분은 내가 무가치한 시간이 아니다. 나는 시간을 보내는 최고의 방법을 연마해왔다. 글을 쓰고 독서를 하고 음악을 듣는다. 어디든 자리잡고 앉을 공간과 책 한권, 수첩 하나, 펜 한 자루만 있다면, 몇 시간이고 시간을 소중하고 알차게 쓸 수 있다.
내가 두려운 건 시간이 족쇄가 되어 나를 몰아세우는 상황이다.
-발췌 : '조그맣게 살거야' 진민정 저-